한국인의 밥상 642회 미리보기

 

설 기획 눈물의 섬, 그리움을 담다

사할린 동포 밥상

 

눈물조차 얼어붙은 여기는 사할린

피맺혀 부르는 이름

이 자식 보기전엔 눈 못 감으실

내 어머니 우리 어머니

일장기에 내몰리며 아우성치며

죽지 못해 살아온 목숨

죽기전에 한번만 가봤으면 내 조국 내 고향

<1990. 05. 15 주현미-사할린 가사 中>

 

일제에 의해 동토의 땅으로 끌려간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

 

탄광, 벌목장, 철로 공사장 등에서 추위와

배고픔, 구타에 시달리며 가혹한 노역에

시달렸지만, 해방 이후에는 이국땅에 버려졌다.

이역만리에서 조국도, 이름도 없이

온몸으로 굴곡진 삶을 감내해야 했던

강제 징용자와 그 후손들.

‘음식이 곧 조국이고 정체성’이었던

그들의 애환과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 밥상을

만나본다.

 

■ 강제 징용자였던 아버지를 위한 사부곡 밥상

 

러시아 사할린은 1년 중 절반이 겨울이고,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20도인 동토의 땅이다.

스무 살 나이에 경상북도 경산에서 이 동토의

땅으로 끌려와 탄광에서 강제노역했던

故 김윤덕씨. 뼈속까지 시린 추위는 물론

매일 이어지는 15시간의 강제 노역과 배고픔에

쥐를 잡아먹으며 버텨야 했다. 온몸에도 상흔이

남아, 발파 사고로 손가락이 잘리고 갈비뼈도

3개나 부서졌다. 6남매의 장남이었던 그의

유일한 희망은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며

사는 것. 그래서 환갑이 지날 때까지도

소련 국적을 받지 않은 채 무국적자로 살았다.

47년에 그토록 고대하던 어머니를 만났지만,

아들을 만난 몇 달 뒤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한은 더욱 깊어졌다. 2000년에는

조국에 영주 귀국할 기회가 생겼지만 자식들을

데려갈 수 없어 포기해야만 했다. 이산의

아픔을 물려줄 수 없었다. 그리고 2018년,

절절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은 채 이국땅에서

눈을 감은 故 김윤덕 씨. 그가 떠난 지 6년,

딸들이 아버지를 추억하는 밥상을 차린다.

할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

고사리 무침. 직접 두부를 쑤고 콩나물을

키우고, 장을 담가서 끓여냈던 콩나물두부찌개,

장남이면서도 부모님 제사를 모시지 못한

불효자의 회한이 담긴 문어숙회 등...

밥상 앞에서 아버지는 평생 한국인이었고,

고향과 조국은 하나뿐이었다.

 

 

 

 

■ 사할린 동포들이 동토의 땅에 남긴 위대한 흔적

 

사할린주의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시.

러시아인 손님들로 북적이는 한 식당의 음식이

예사롭지 않다. 김치, 오이무침, 명태회무침 등

영락없는 한식 반찬들이다. 이 식당을 맨처음 연

이는 강제 징용자의 아들인 김종성 씨(90세).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돼 벌목공으로

갖은 고생을 한 아버지에 이어 그 자신도

조국 없는 이방인으로 온갖 설움을 겪다가

88서울올림픽으로 조국이 러시아에 알려지자

곧바로 사할린 동포들의 음식을 파는 이 식당을

연 것이다. 이곳에서 파는 음식 가운데

사연 없는 음식은 없다. 먹을 게 없어 산이며

들에서 채취한 고사리 등을 무쳐낸

각종 나물 음식들. 러시아인들이 가축 사료로

쓰던 명태나 대구로 만들어낸 명태회무침과

대구해물탕 등. 모두 러시아인들이 먹지 않던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이라, 처음에

러시아인들은 ‘저건 짐승이나 귀신들이 먹는

음식’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이제

사할린 동포들의 한식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사할린 러시아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들의

입맛과 음식문화까지 바꿔놓았다. 조국으로부터

버려진 국민이라는 절망과 차별을 딛고

일어선 강제 징용자와 그 후손들의 끈질긴

생존력이 담긴 밥상을 만나본다.

 

 

 

 

■ 다시 쓰는 사할린 아리랑

 

2007년 조국으로 돌아온 도명자 씨(80세)는

사할린에 남은 후손들이 늘 걱정이다. 윗대가

떠나온 이국땅에서 후손들이 정체성을 읽을까

싶어 증손주들의 돌 한복까지 일일이 챙기고

있다. 강제 징용자였던 아버지와 그 세대가

얼마나 눈물겹게 밥상과 전통문화를 지켜냈는지

생생하게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며칠에 걸쳐

고임 음식을 만들어 돌과 환갑을 축하하고,

음력을 몰라 양력에 맞춰 동포들이 다 함께

모여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을 쇠곤했다. 아직도

그녀의 기억 속에는 조국의 소식을 하나라도

듣기 위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고, 옛노래를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할머니의 노심초사를

아는 손자 세르게이 씨(36세)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뒤, 사할린 한인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다. 딸 옐레나 씨(57세)는 비록

한국어는 서툴지만, 잡채 만두 떡국 호박전 등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배운 음식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90년 한국과

소련간 수교가 맺어진 뒤, 사할린 동포들에게

드디어 든든하게 뿌리내릴 조국이 생긴 것.

비극의 역사를 딛고 희망을 꿈꾸는

사할린 동포 3, 4세들의 설 밥상과

설 풍속을 만난다.

 

- 프로듀서 임기순

- 연출 선희돈 / 작가 최선희

- 프리젠터 최불암

- 제작 KP 커뮤니케이션

- 방송일시 2024년 2월 8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8시 30분 (KBS1TV)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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