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 619회 미리보기
잊지 않기 위해 자연인 김우섭, 최영숙
겹겹이 펼쳐진 산. 크고 작은 산등성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거대한 풍경은
그 어떤 슬픔도, 그 어떤 고민도
별것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속에 그림처럼 자리 잡은,
편백 나무 향이 솔솔 풍겨오는 한옥집.
텃밭에서 싱싱하게 무르익고 있는 채소와
과일들. 꿈결에서나 본 듯한 이 유토피아를
만든 건 김우섭(58), 최영숙(55) 부부다.
그런데 그들이 이 산골에 자리 잡은 건
로망 실현 정도의 이유가 아니었다.
애를 끊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터를
닦아나갔다는 부부. 사실 이곳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그들의 첫사랑,
지금은 세상에 없는 첫째 딸이다.
먹고 사는 일은 언제나 빠듯했고
아이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남편 김우섭 씨는 단무지 공장에서 일했고
부인 최영숙 씨는 김밥 장사를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벽부터 늘 바빴기
때문에 아이들의 고사리손까지 빌리는
일이 많았다. 학부모 참여 행사에
얼굴 한번 비치지 않던 부모를 원망하긴커녕
서로를 챙겨가며 부모님의 일까지 돕던 삼 남매.
그중에서도 첫째 딸은 가장 든든한
녀석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김밥 배달을 다니고 동생들까지 챙기던
어엿한 맏딸. 부부의 자랑이었던 첫째 딸은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암 선고를
받았다. 혈관에 자꾸 종양이 생기는
육종암. 그날, 그들의 하늘이 무너졌다.
그때부터 김우섭 씨는 산골에 집을 짓기로
한다. 딸이 풍경 좋은 곳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지내다 보면 암을 극복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 간절한 마음으로
건축업자에게 집 짓는 일을 맡기고,
딸 간병에 전력을 다했던 김우섭 씨.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건축업자는
집의 뼈대만 세워 놓고 돈만 챙겨
사라져버렸다. 김우섭 씨에겐 건축업자를
잡아다 실랑이할 시간도 아까웠다.
그에겐, 아니 딸에겐 시간이 얼마 없을지도
모르니. 그렇게 한옥 짓는 방법을 하나하나
공부해 가며 필요한 장비를 그때그때
마련해 가며 집을 지은 지 5년.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딸이 세상을 떠났다.
함께 설계도를 보며 가슴 벅차했던 딸은
그 집에서 단 하루도 지내지 못했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 잊으라지만 그들은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산다. 그리고
그들의 첫째 딸은 그들 곁에 있다. 집 앞,
가장 곧게 뻗은 소나무에 수목장을 하고
그 주변엔 딸이 좋아했던 꽃과 과일나무를
심었다. 딸이 잠든 소나무 앞에 의자를
놓아두고 그곳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다는
부부. 그들은 딸과 함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이곳에서, 이젠 마음껏 웃으며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집 짓는 일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 산에서 진흙을 구해다가
서까래에 바르고, 집 짓고 남은 자재를
이용해 목공예품을 만들기도 한다.
돌무더기에 삼겹살을 구워 직접 담근
두릅장아찌에 싸 먹는 건 아이들과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산중의 소소한
이벤트. 평상에 앉아, 언제 바라봐도
아름다운 하늘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그렇게 조금씩
삶의 평화를 알아가는 부부. 어쩌면 이 생활은,
삶의 첫 감격과 환희를 선물했던
그들의 첫째 딸, 그 아이가 남긴
두 번째 선물일지 모른다.
이젠 많은 것들이 괜찮아졌다.
마음껏 추억하고, 웃으며 기억할 수 있다.
그렇게 삶은 찬란하게 이어진다.
자연인 김우섭, 최영숙 부부의 이야기는
방송일시 2024년 8월 21일 수요일
밤 9시 10분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mb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