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629회

 

오래된 풍경, 안부를 묻다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박노해 시“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중에서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 계절의 끝자락

세월을 따라 사람과 함께 나이가 든

풍경들이 있다 낡고 빛이 바래가지만,

오랜 경험과 지혜가 쌓여

새로운 쓸모를 간직한 풍경들

그 시간만큼 더 깊고 단단해진

인생의 맛을 만나본다

 

고단한 세월을 찧다

- 청도 80년 정미소를 지키는 할머니 이야기

 

경북 청도군 유천마을, 청도에서

제일 큰 번화가였던 유천마을, 마을도 세월을

피하지 못했다. 동네에서 변하지 않은 유일한

정미소를 지키고 있는 김말순 어르신의 하루도

여전하다.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면 벼를

도정 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로

분주하다는데.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가만히 손 놓고 구경만 하는 법이 없다.

기계 돌리는 일은 위험하다며 손도 못 대게

하던 다정한 남편은 먼저 떠났지만,

홀로 정미소를 지키고 있는 말순 어르신의

옆자리를 지켜주는 오래된 이웃들이 있다.

그 시절을 함께 지나온 마을 사람들에게 세월을

찧고 추억을 쌓으며 살아온 정미소는

동네 사랑방! 모이면 봉지 커피로 시작해,

갓 지은 햅쌀밥에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을 넣은

비빔밥, 아궁이 불에 구워낸 자반 고등어

한 마리까지 특별할 게 없지만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고 살아온 서로를 위해 최고의 한 끼가

차려진다. 마주 앉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이웃들이 있어 고맙다. 그렇게

80년 세월을 품은 정미소에

또 한 번의 가을이 지나간다.

 

 

 

 

30년 국수공장, 국수가락 만큼 긴 세월의 맛

 

■ 서울 소개된 곳

 

* 옛날국수 경남상회

(국수, 쌀, 잡곡, 참기름 등 판매)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문의 연락처 O1O 3224 72OO

 

서울특별시 가양동, 30년 넘게 국수를 뽑고

있다는 임유섭 씨. 처음엔 쌀장사를 했지만,

국수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덜컥 기계를

들이고 밤잠 설치며 시행착오를 거쳐,

30년 넘게 국수 만들고 있다. 밀가루 반죽부터

건조까지 임유섭 씨의 손을 거치지 않는

작업이 없다는데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듯

국수가 더 맛있게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같이 국수 만들고 있단다. 옆에서

챙겨주던 아내가 먼저 떠나고, 국수가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는데.

따뜻한 멸치육수에 말아낸 국수 한 그릇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어머니의 아궁이와 베틀,

그렇게 그리움이 익어간다

 

◼ 청양 소개된 곳

 

* 춘포 옷감짜기 체험장

(누에, 모시, 베틀짜기 체험 등)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 후덕동길 50-21

문의 전화번호 O1O 5461 51O3

 

청양군 운곡면, 고향으로 돌아와

다섯 번째 가을을 맞고 있다는

이석희, 김희순 부부. 자동차 회사에서 기술자로

오래 일했던 석희 씨는 두 번의 암 수술을

이겨내고 귀향을 결심했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쓰던 베틀과 아궁이, 지은 지 100년 넘은 옛집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고 있다. 명주와 모시를

섞어 짠 춘포가 유명했던 운곡면은 집마다

길쌈하던 마을. 부부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쓰던 베틀을 물려받아 춘포 짜기의 명맥을

잇고 있다. 실을 얻기 위해 모시 농사며

누에 농사까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농사일.

늦가을, 밭 구석구석 거두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데. 잘 여문 동부 콩은 맷돌에 곱게 갈아

전분물을 우려내 가마솥에 붓고 눋지 않게

끓여 굳혀내면 동부묵 완성. 달큰한 가을 무청을

넣고 끓인 소고기무청국과 누에고치 속

번데기를 달달 볶은 번데기볶음까지

그리움으로 차려낸 밥상을 만나본다.

 

옛날은 가도 추억은 남아

- 목포 유달동 사람들 이야기

 

목포 유달산 자락, 바다를 내려다보고 유달동은

인근 섬마을에서 이주해온 어부들의 마을.

산비탈도 마다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곳은

고마운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다. 고단했던

시간이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가 되었다.

화단에 채소 키우는 재미로 산다는

김금석 할아버는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텃밭 대신 화단에 갓이며 무를 잘 골고루

가꾸고 있단다. 고향 완도에서

자식 잘 키워보자며 목포 항구 가까운 마을에

자리를 잡은 지 60년. 마을의 터줏대감

최연당 씨도 해남에서 7세에 떠나와

70년 넘게 한자리 지키고 있는데.

산을 깎아 집을 짓다 보니 커다란 바위 옆 판자를

쌓아 부수고 벽돌집을 짓기를 반복하며

지금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얻게 되었다.

질릴 정도로 손질해서 널어 말리던 풀치는

먹기 좋게 찢어서 무쳐내면 밥반찬으로 제격.

고구마로 끼니를 대신하던 시절 고구마순과

호박, 고등어를 넣은 쪄낸 고구마순고등어찜과

한치물회까지 일은 험했지만 바다가 내어준

넉넉함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고단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온

유달동 사람들의 오래된 기억들이 켜켜이

쌓이고, 유산이 되어 밥상을 채운다.

 

■ 기획 KBS/ 프로듀서 정기윤

■ 제작 KP 커뮤니케이션

/ 연출 남호우 / 작가 전선애

■ 방송일시 2023년 11월 09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8시 30분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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