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650회

 

밥상의 전설, 포구의 추억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적인 포구!

도시화와 대형 항구에 밀려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지만,

포구에는 궁핍한 시절을 이겨낸

강인한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다.

실향민 등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모여들어 억척스럽게 삶을 일궈낸

역동적인 공간이자 마지막 안식처였던 포구.

 

그리운 추억이 담긴 포구 밥상을 통해

포구의 의미를 조명해 본다.

 

■ 한강 하구에 남은 마지막 포구

– 김포 전류리포구

 

◼ 김포 전류리포구 소개된 곳

 

전류리 사랑호

연락처 전화번호 0507.1444.3680

경기 김포시 하성면 금포로 1923

 

서해와 만나는 한강 하구의 최북단에 있는

김포의 전류리 포구. 한때 11개의 포구가

번성했던 김포에 유일하게 남은 포구로,

아직도 군사 보호구역이다. 허락된 뱃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한 금단의 포구에서 새벽 조업을

나가는 장성환 씨(65세) 부부. 한강 어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11살 때부터 고기잡이를

시작해 한강 개발로 반포에서 전류리까지

떠밀려 온 장성환 씨(65세)는 12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바닷물, 그 물때의

거센 물살에 자신을 맡긴 채 살고 있다.

물고기 중에는 바다와 강을 오가며 사는 것들이

있어 밀물 때 따라 올라오는데, 지금은

숭어 철의 끝물이자 산란을 위해 한강의

갈대숲을 찾아온 웅어가 막 올라오는 시기.

한강의 숭어와 웅어는 허균의 미식서

<도문대작>에서도 그 맛을 인정한 바 있고,

임금님께 바치는 진상품이기도 했다.

 

숭어와 웅어는 횟감으로 최고. 숭어는 높이뛰기

챔피언 소리를 들을 만큼 잘 뛰어올라

그 살이 쫄깃하고, 멸칫과의 웅어는 그 살이

연하고 부드럽다. 이런 웅어에 불맛을 입혀

구우면 고소한 풍미까지 더해진다. 하지만

장성환 씨(65세) 부부에게 이 물고기들이

특별한 것은 그 맛에 담겨있는 추억 때문이다.

말린 숭어에 양념장을 얹어 찜을 하다 보면,

남편이 잡아온 물고기를 가득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나가 자식들 먹일 보리쌀로

바꿔오셨던 어머니의 고단했던 삶이

떠오른다. 숭어에 새우, 미나리 등을 넣어

끓이는 숭어 매운탕은 새우 철이면 이웃이

다 함께 제 일인 것처럼 손을 보태고 음식을

나누는 포구의 정을 닮은 음식이다. 그래서

전류리 포구는 장성환 씨(65세) 부부에게

행복을 주는 보석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 파시의 추억

– 인천 유일의 갯골 포구, 북성포구

 

새벽 6시에 이루어지는 경매 시간에 맞추느라

밤샘 조업에 나선 정남훈 선장(66세).

큰 자루 형태의 그물을 바다에 쳐놓았다가

거두면, 온갖 물고기들이 쏟아진다. 도다리,

간자미, 물메기 등.. 요술 그물이라 불리는

낭장망이다. 그런데 경매까지 마치고 나면

그가 돌아가는 고향은 따로 있다. 바로 인천

해안에 남아있는 유일한 갯골 포구인

북성 포구. 갯골 포구는 갯벌 사이로 움푹 파인

갯골을 따라 배가 오가는 포구인데, 물때가

맞아야만 조업을 나갈 수 있다 보니,

많은 배가 큰 항구로 떠났다.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선상 파시가 열리는 포구이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3년 전에 중단되었다.

하지만 북성포구는 실향민 등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억척스럽게 삶을 일군

역동적인 현장. 떠들썩함은 사라졌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애환이 서린 곳이라

정 선장과 포구 사람들은

쉽게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한다.

 

고향은 다르지만, 북성포구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며 평생을 함께 살아온 여인들에게

사연 없는 음식은 없다. 술국의 최고봉이라는

물메기 물텀벙이탕과 도다리매운탕을

끓이다 보면, 거친 뱃일로 고생만 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들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도다리통튀김에는 남편을 돕느라

배에 올라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네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난다. 그런데도

간자미찜을 하다 보면, 몸은 힘들었어도

간자미가 풍성하게 올라오던 시절이

그립단다. 힘든 세월을 강인하게 버텨낸

포구 여인들의 밥상을 만나본다.

 

 

 

 

■ 굴막의 전설 – 인천 만석부두

 

인천 명낚시

인천광역시 동구 만석부두로 7-1

http://mfish.sunsang24.com/ship/board

 

전통적으로 인천 앞바다는 너른 갯벌을 가진

인천 중동부 해안을 가리킨다.

이제는 공업단지가 된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만석부두. 매립으로 갯벌은 그 흔적조차

없지만, 만석부두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갯벌은

삶의 터전이다. 물이 있어야 배를 띄울 수 있기

때문에 2시간 전에 미리 바다 한가운데에

나가서 배 위에서 식사하며 기다리는 썰물시간.

그렇게 만석부두 사람들은 인천대교 앞

갯벌에서 수십 년 동안 굴을 캐며 삶을

이어왔다. 하지만 영종대교와 인천대교,

영종도 신공항 등이 건설되면서 든든했던

터전도 예전 같지 않다. 바다 환경의 변화로

조류의 흐름이 달라져 퇴적층이 순환되지

못한 채 갯벌의 굴밭을 뒤덮고 있다.

만석부두 사람들에게 굴이 사라진다는 것은

일거리만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들에게 굴은

살아온 역사, 그 자체다. 한국전쟁 이후,

만석부두는 미국 원조물자의 하역장.

일자리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때부터 아낙네들은 부두 앞 굴막에서

굴을 까 생계를 꾸리고 자식들을 키웠다.

 

수십 년 동안 만석부두에서 굴을 캐고 굴을

까온 김분녀(73세), 이경심(75세),

문선희(64세) 씨. 휘어진 손가락이 그녀들이

살아온 고단한 삶을 말해 주고 있는데,

이삼일씩 밤을 새워가며 차려냈던 굴회에는

그네들의 소리 없는 울음이 담겨 있다.

소화에도 좋고 섬유소도 많은 무를 갈아

단백질이 풍부한 굴과 함께 고춧가루에

무치는 무채굴장아찌는 일터에서 허겁지겁

먹던 끼니이기도 했다. 굴을 살짝 데친 뒤

밀가루와 계란 물을 입혀 구워내는 굴전에는

새벽일을 나가느라 자식들 도시락 한번

직접 챙겨주지 못한 어머니로서의 미안함이

묻어있다. 굴이 곧 삶이었던

만석부두 여인들의 밥상을 만나본다.

 

■ 프로듀서 임기순

 

■ 연출 선희돈 / 작가 최선희

 

■ 프리젠터 최불암

 

■ 제작 KP 커뮤니케이션

 

■ 방송일시 2024년 4월 4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8시 30분 (KBS1TV)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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